무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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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나와TV 댓글 0건 조회 13,563회 작성일 20-07-10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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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다면, 믿지마.
하지만, 이건 정말 있었던 일이야....



휴...
아직도 가끔씩 그 무시무시했던 모습이 떠올라 잠을 못 이루곤 한다.
그래도 너희들도 자세한 얘기는 잘 모를거야.
대학생 때 전국 무전 여행때 겪은 일..
1학년 겨울 방학때였으니, 벌써 10년이 된 이야기 구나..
하지만, 아직도 가끔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
너도 나도 유럽배낭 여행이라고 떠날 때, 나는 우선 우리나라 전국을 돌아다
니고 싶었어. 그것도 구시대의 낭만이라는 무전 여행으로..
우리나라를 먼저 속속들이 알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그래서 마음 맞는 과 친구 두 놈과 무작정 여행을 떠났어.
우리는 한 사람당 비상금 5만원씩만 들고 무모한 겨울 여행을 떠났어. 모자라
는 돈은 막일이라도 해서 벌어채우자면서.
시작은 즐거웠고, 자신에 찼지..
그때는 몰랐어, 얼마나 어리석고 악몽같은 여행이 될지는...
유럽 배낭 여행에는 기차를 이용한다면, 우리 나라 전역을 돌아다니는데는 시
외버스라는 훌륭한 교통수단이 있어.
니네들이 유레일 패스로 유럽을 횡단할 때, 나는 시외버스 시간표 책을 가지
고 계획을 짜서 전국을 돌아다녔어. 왠만한 동네도 시외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거든.. 어쩔 때는 지나가는 차 얻어 타기도 했어.
며칠을 그런 식으로 다니니 완전히 거지꼴 다되었더라.
아무 재주도 없는 우리들이 완전 타향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것도 하루, 이틀 일하고 떠난다고 하니 누가 우리에게 일을 맡기
겠니? 더구나 겨울이어서 농촌에 일도 없더라.
그때는 무슨 깡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여하튼 돈 벌려고 했지만, 일이 없는거야.
간신히 얻은 하루벌이가 바로 시체 염하는 일이었어. 벌이는 짭짤했지만 할
일은 안돼더라. 무섭기도 하고.. 하루일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았지만,
그 찝찝한 기분을 잊으려고 술마시다가 하루밤에 그 돈을 다썼지.
그런 식으로 여행을 했어.
서해부터 돌다가 한 열흘쯤 지났을까..
어느새 돈은 다 떨어지고, 글자 그대로 빌어먹는 여행을 시작했어.
처음에는 흥미 있는 고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힘든 고행이 되었어.
춥고, 배고프고, 잘때도 없고...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지칠대로 지쳤고 겨울이라 잠자리도 마땅치 않아 결국
지리산까지 도착했다가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그때 우리는 지리산 구석의 어느 작은 산마을에 있었어.
우선 서울로 가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나와야 했지. 우리는 그 마을에서 일
도와주고 받은 몇 푼으로 겨우 버스비를 마련했어..
우리는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고, 이 고생에서 벗어나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도
착하길 바랬어. 추위에 떨다 따뜻한 버스에 타니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흔
들림에도 노곤함을 느끼고, 잠이 들었어.
얼만큼 잤는지,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서 버스 밖을 내다보니, 읍내가 아
닌 더 깊은 산속이었어.
주위는 어두컴컴해지려고 했고, 우리를 제외하고 두세명 밖에 되지 않던 승객
들도 다 내리는 거야.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난생처음 들어본 전라북도 산골 마을이래.
우리가 자던 사이에 읍내를 거쳐 엉뚱한 곳으로 와버린 거야.
이 버스는 막차이며, 더 깊은 마을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고 나온다는 거야.
황당하더라고.. 우리는 거기서 내리기로 했어.
밤이 되기 전에 일 도와줄 곳을 구해, 하룻밤 지낼 곳과 나오는 버스비를 구
하기로 했지.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생각을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어.
살을 에는 듯한 산바람이 불어오고, 온톤 사방은 산밖에 보이지 않는 거야.
시간은 5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해는 지고 있었고.
먼저 내린 사람들을 따라갈 생각을 했지만, 어느새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
가 사라진 거야. 버스는 우리를 내려놓자마자 도망치듯 떠났어.
우리는 떠나간 버스 뒤에 대고, 우리를 태우고 가라고 소리쳤지만 버스는 먼
지를 풍기며 언덕너머로 사라졌어.
정말 막막하더라.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사는 집이 보이질 않는 거야.
여기서 내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분명히 사람 사는 곳이 있다는 얘
기인데, 눈에 띠는 것은 정말 음침한 산 뿐이었어.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
어. 길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산쪽으로 난 오솔길이 보이더라고.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그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어. 길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다닌다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오솔길을 따라 올
라갔지.
앙상한 나뭇가지이며, 길 주변의 괴기하게 생긴 나무들과 바위들을 보니 괜히
으시시해 지더라. 한참을 걸어도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어. 오히려
산 속 깊이 들어와 가딱하면 길을 잊어버릴 것 같더라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은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
이게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라,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면 어떡하냐 라는
생각이 들었어. 해는 어느새 산너머로 사라졌고, 추위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
어. 배도 고프고.. 정말 답답하더라.
손과 발, 얼굴 할 것 없이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어.
그렇다고 쉴 형편도 되지 않아, 마냥 걸었어. 이제와서 돌아올 형편도 되지
않았거든. 우리 모두 겁이 나는지 말도 않고 묵묵히 그냥 걸어갔어. 사실 말
할 힘도 없을정도로 지쳤거든..
그러다 길 저쪽 편이 불빛이 보이는 거야.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는 지친 것도 잊고, 그 집을 향해 앞다투어 뛰어 올라갔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직도 이런 집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초
가집이었어. 그래도 우리는 개의치 않고, 뻔뻔스럽게 그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 마당까지 들어가 주인을 찾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그 집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과 냄새를 느꼈지만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아.
단지 배고프고 춥다는 일차원적인 생각뿐이었으니까..
몇번을 불러도 방안에서는 대답이 없었어. 분명히 불은 켜져 있는데. 좀 이상
했어.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어.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을 보고, 우리는 순간적으로 움칫했어.
우리나이 또래의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나타난 거야.
그런데 그 얼굴을 보니, 무슨 정신 장애자처럼 초점없는 눈에 멍한 모습을 하
고 있었어. 정말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우리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 몇번을
얘기를 건네봐도 그 쾡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만 있는 거야. 괜히 으시시해지
더라. 난감해 하는데, 그 사람 뒤로 '손님 오셨네'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마흔정도 되 보이는 아줌마였어.
첫인상이 아주 친절해 보여, 마음이 놓이더라.
우리는 우리 사정을 얘기해주고, 지금 배고프고 잘 곳도 없으니 그것만 해결
해주면 어떤 일이라도 도와드리겠다고 했어. 그 아줌마는 좀 생각하는 것 같
더라. 하긴 그 외진 곳에 여자 혼자서 난생 처음 본 남자 3사람을 재워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집에는 할 일이 없는데...'라며 한참을 뜸을 들이던 그 아줌마는 우리들
거지꼴이 불쌍해 보였는지 허락했어.
대신 한가지 일만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우리는 저녁을 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정말 모든 일이 해결된 기분이었어. 추
운데 방에 들어와 몸 좀 녹이라는 아줌마의 얘기에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어.
방에 들어가다가, 우리는 한번 더 흠짓 놀랐어.
거기에는 아까 문앞에서 본 남자와 비슷한 증상으로 보이는 10살 또래의 남
자애가 벽에 기댄체 멍하니 앉아있었어. 그 애 역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
었고,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있었어. 아줌마는 우리가 놀라는 것을 눈치챘는
지, 한숨을 내쉬면서 푸념조로 얘기하더라.

"우리 큰 애와 둘째 애에요.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저질렀는지 다들 태어날 때부터이래요..
휴..."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리는 그 아줌마가 불쌍해 보였어.
아줌마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밥을 차리러 부엌에 갔어.
따뜻한 방에 들어와 앉아있으려니, 몸이 노곤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지더라고..
구수한 밥짓는 냄새까지 나니, 배는 고팠지만 피곤해서였는지 우리모두는 꾸
벅꾸벅 졸았어.
그러다가 귀청이 찢어지는 것 같은 괴성에 졸음이 확 깼어.
아줌마의 둘째라는 애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우리는 놀라서 그 애를 봤어.
좀전까지도 멍하니 있던 그 애는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포에 질린 눈
을 하며 발광을 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가.....가............가!!가.........가..........가!!!"

밥짓던 아줌마가 부엌에서 뛰어나와 애를 붙잡았어.
그런데 원래 그렇게 다루는지, 그 발작하는 애를 사정없이 때리는 거야.
보기에 섬뜩할 정도로 개패듯이 그 애를 때리는 거야.
그 때 아줌마의 얼굴은 조금전의 친절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무시무시하고
끔찍해 보였어. 그 발작하는 애는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아줌마에게 뭇매를
맏더니 금새 조용해지는 거야.
아줌마는 그제서야 우리가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겸연
쩍은 목소리로 변명하듯이 얘기했어.

"얘가 손님만 오면, 이렇게 생난리를 쳐요.
가만 두었다간 도저히 안되서, 이런 식으로 버릇을 가르키고 있지요.
휴..."

그 말과 함께,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눈으로 둘째를 쏘아보고는 다시 부엌
으로 들어갔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는 그 일로 잠이 확달아 났어.
부엌에 들어간 아줌마는 우리가 도망갔을까봐 걱정했던 것처럼 금새 상을 차
려왔어. 다 쓰러져가는 산속 초갓집의 밥상치고는 푸짐했어.
특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운 고기는 한상 가득히 나왔어. 아줌마 말로는 동
네 주민이 가져다준 맷돼지 고기라는 거야. 더구나,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인지
곡주라며 술까지 내왔어. 배고팠던 우리는 정말 허겁지겁 밥과 고기를 먹어치
웠어. 고기는 시커먼 색깔과는 달리 연하고 맛있었어.
우리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배터지게 먹었어. 아줌마는 그렇게 밥을 먹는 우
리를 보고 안쓰럽다는 듯이 얘기했어.

"아이고... 젊은 장정들이 얼마나 배고팠으면..
많이들 먹어요.
실컷 먹고, 한 가지 일만 해주면 되요."

우리는 아줌마가 무슨 말을 해도 신경도 안쓰고 밥먹는데만 집중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먹어 치운거야.
피곤하고, 빈속에 술까지 마셨더니 금방 알딸딸하고 취기도 느껴졌어.
그 술은 입에서는 달았지만, 생각보다는 독하더라고.
술이 들어가니, 우리는 그 동안 고생한 것을 잊은 듯이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
어. 아줌마도 맛있게 식사하는 우리들도 기분좋게 보고 있었지.
그런데, 나는 밥을 먹다가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어.
돌아보니, 역시 정박아라는 첫째가 우리를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
는 거야. 아까 볼때는 아무 감정 없는 멍한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우리를 왠
지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거야.
괜히 기분이 찝찝해지더라..
모자란 애니 그러려니 하고, 남은 밥을 다 먹어치웠어. 배에 뭔가가 들어가니,
좀 정신이 들더라. 그리고 나서, 방을 살펴보니 정말 사람 사는 곳 같지도 않
았어. 무슨 버려진 집 같더라고..
아줌마는 우리가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밥상을 치웠어.
우리가 식구들은 식사를 안 하느냐고 묻자, 벌써 먹었다고 했어.
밥도 얻어먹었으니, 빨리 일을 돕자며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어.
솔직히 그때는 빨리 일하고 들어와 그 맛있는 술을 더 마실 생각도 했어.
미친놈..
아줌마는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어.

"별일 아니라우...
여자 혼자 살림을 꾸리려니, 힘쓰는 일을 못해서.
사실 안 해줘도 되는데...
정 도와주고 싶다면 일로 따라와요."

아줌마를 따라 우리는 창고로 갔어.
거기에서 아줌마는 우리에게 곡갱이와 삽을 하나씩 주고는, 검은 비닐에 쌓인
무언가를 보여주며 얘기했어.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가 죽었거든..
묻어줘야 하는데, 땅도 얼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서
여기 창고에 그냥 놨두었어.
그러니 장정들이 이것 좀 묻어주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어. 그런데 어디다 묻냐는 질문에 아줌마는 미안한 듯이
대답하더라고..

"그런데.. 아무리 같이 지내던 짐승이라도 집 근처에 묻긴 좀 그렇다우..
그러니, 수고스럽더래도, 산 위로 좀 올라가 묻어줘요..
자, 여기 후레쉬들고 가고.."

밖에 날씨를 생각하니, 좀 고생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적당히 취기도 돌고 해
서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또, 우리가 대접받은 것을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도와줘야 할 것 같았어. 곡갱이와 삽들은 두 친구들이 들고, 나는 고양이 시
체가 들었다는 검은 비닐 봉지를 들었어.
좀 큰 고양이 였는지, 묵직하더라고..
아줌마는 마당까지 쫓아나와 산쪽으로 난 길을 가르쳐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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