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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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나와TV 댓글 0건 조회 11,740회 작성일 20-07-10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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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은 오늘도 짜증섞인 눈물을 흘리며 신경질을 부린다.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엄마가 증오 스럽다. 현석은 어째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 도통 알수가 없다. 그 때문에 신경질이 나 죽겠는 모양인지 울상으로 잔뜩 찌푸려진 얼굴이 그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베란다 유리창을 볼펜으로 긁을때 나는 끼긱 거리는 소리가 그에겐 무척이나 즐거운 소리였다. 언젠가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그램 에서 나온 돌고래가 내는 소리와 비슷한게, 자신이 꼭 그 이쁘게 생겼었던 돌고래와 소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현석의 악취미 때문에 볼 포인트가 빠져 잉크가 줄줄 세는 박살난 볼펜이 쓰레기 봉투에 허구헌날 가득했고, 노란 규격봉투에 검은색 잉크가 오물처럼 덕지덕지 묻어나기 일쑤였다. 그 것을 참지 못했던 유정은 볼펜을 집안에서 모두 없애 버렸다. 그러나 이가 없으면 밥을 못먹을 쏘냐. 젓가락 으로 그짓을 대신하는 현석이다 . 도저히 그의 악취미를 막을 방법이 없는 유정이었다. 더욱 힘든건 같은 층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이 밤낮 없이 찾아와 소음에 대해 불편을 호소한다는 것이었다.



유정은 현석때문이 아니라도 세상사에 찌들어 언제나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바깥일을 한다는 핑계로 정신연령이 다섯살 밖에 되지 않는 현석을 나몰라라 피하기만 했고, 그때문에 보통 아이보다 손이 수십배는 더 가는 현석을 하루종일 돌봐야 하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었다. 차라리 자폐아 학교에 보낼까 생각도 했었지만, 의심이 많고,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의 억척같은 성격탓에 현석을 아무에게나 맡길수 없었다. 더군다나 젊은시절 남편과의 애틋한 사랑의 결실인 현석을 나몰라라 한다니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과의 꿈 같던 신혼 시절 현석을 낳고 울며 기뻐했던 자신이 아직 가슴속에 남아 있는 유정이었다. 산부인과 에서 출산의 고통과 탈수 현상을 겪으며, 희미해지는 의식속에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에 맹세 했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이 아이를 반드시 훌륭하게 키워 내리라. 자신과 남편이 만들어낸 생명체를 결코 허투루 돌보지 않으리라 맹세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유정은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현석을 자신의 일을 핑계삼아 외면할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손톱만큼 일지라도. 어찌 됐든 현석은 자신의 뱃속에서 열달동안 배불러 낳은 소중한 아이 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강철 같던 단단한 다짐마저도 일순간에 무너지게 하는 것이 바로 현석의 악취미였다.



"놔! 놔!"

"우리 현석이..... 이러면 엄마가 저녁밥에 콩 잔뜩 넣어줄꺼야."

"그러던지 돼지야!"



유정은 웃으며 대화로 고집불통인 현석을 어르려 했다. 현석의 고집이 요즘들어 더욱 세진것 같았다. 뾰루퉁한 볼에 한껏 숨을 머금고 풍선처럼 부풀려보는 현석이다. 유정은 현석의 그런모습이 이제는 더이상 귀엽지도, 사랑스럽 지도 않았다. 정신연령이 다섯살 에서 멈추었다고는 하지만, 몸은 계속해서 성장하기 때문에, 현석은 아이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 큰 어른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힘은 또 어찌나 쎈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는 건장한 남자가 되버린 현석을 도저히 이길수 없었다.



현석이 볼펜을 마치 '햇님 달님' 이란 동화 속의 동아줄 이라도 되는양 죽을듯 힘을 주어 붙들고, 고집을 피우는 통에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먹고 있었다. 결국 현석이 극도로 싫어 하는 반찬인 '콩' 을 이용해 이 상황을 타개하려 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현석에겐 그깟 콩반찬 을 먹는것에 대한 두려움 보다, 볼펜을 잃는다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이익!"



쿠당탕.



어찌나 기를 쓰고 달려 들었었는지 유정은 손아귀에 가득한 땀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더이상 주민들의 경멸스런 눈초리도, 현석의 짜증나는 취미생활도 참을수 없었던 그녀였기에 더욱 처절하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국 손아귀에 고인 땀에 볼펜이 주우욱 미끄러져 버렸다. 그탓에 그녀는 거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엄마를 힘으로 제압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분이 좋은 현석이었다. 이제 엄마 조차도 자신을 막을수 없다는 것이다. 집안의 절대강자 였던 엄마 마저 말이다. 늦잠을 자도, 콩반찬을 안먹어도, 유리긁는 소리도 마음껏 들을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이집에서 더이상 자신을 제제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석은 날아갈 것마냥 기분이 좋았다.



"히히히"



끼이이이이익.





"우..우..흐으읍.."



유정은 눈가가 촉촉히 젖어왔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해 마음 같아서는 펑펑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유정은 눈물이 흐르는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아래층에서 성이 난듯 쿵쿵 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 이었다. 이윽고, 초인종을 미친듯이 누르는 소리에 유정은 베란다 문을 열고 뛰어내려 버리고만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남편은 이럴때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유정은 괜시리 남편인 철준이 보고싶었다.



띵동 띵동!

끼이이이이익!



불규칙하게 뒤섞여 듣기 껄끄럽고, 불쾌한 소리 라는 뜻의 소음. 그 소음 중에서도 사람의 심기를 가장 뒤틀려 놓는다는 두 종류의 소음이 그녀의 귀를 미친듯이 괴롭히고 있었다. 관자놀이 가 다 지끈 거릴 정도였다. 유정은 두 소음중 어느 하나라도 막아야만 한다 싶었다. 어차피 현석은 이미 무리였다. 두손으로 꽉쥔 볼펜을 광기 어린 눈으로 뚫어 져라 쳐다보며 뭐라뭐라 중얼 거리는 모습이 마치 실수로 살짝 건드리기 라도 하면 미친듯이 물어 뜯는 도사견 처럼 위험천만해 보였다. 현석을 막을수 없다면 결국 한가지 수 밖에 없다. 초인종 소리를 멈추고 아랫층 사람을 맞이 하는 수 밖에.



유정은 눈물이 눈시울에 방울질 틈도 주지 않고, 촉촉히 젖은 눈가를 소매로 훔치곤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초인종 소리가 가까워 지자 유정은 아랫집 여자의 무서운 인상이 떠올라 오금이 저려왔다. 허나 무서운 인상의 그녀가 등장하면 그렇게 안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석의 악취미를 멈출수 있는 것 또한 아랫집 여자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현석은 항상 고집통을 부리며 유리를 긁다가도 아랫집 여자의 무서운 인상과 맞닥뜨리면 기겁을 하며 자신의 방으로 도망치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정신이 미숙한 어린 아이에겐 충분히 공포스런 외모의 소유자 였으니까.



"또 시작이군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얼음장 같은 얼굴로 하는 말이 그것 이었다. 역시나 칼로 반듯이 자른듯한 예리 하면서도 각진듯 단단한 말투였다. 유정은 그녀에게서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로로 길게 찢어진 족제비 같은 눈매가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볼수 없을 정도로 위압감을 심어주었다.



"미..미안해요. 매번 정말 미안합니다."



주눅든 모습으로 유정은 그녀에게 사과의 말을 했다. 이웃에게 고개를 조아리는게 도대체 몇번 이었던가. 수도없이 그래왔지만 아직도 자존심을 몽땅 짓밟히는 듯한 이기분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유정 이었다. 그 와중에도 등뒤에선 현석의 취미생활이 계속 되고 있다. 아랫집 여자는 유정의 사과를 들은채 만채 그녀를 떠밀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광폭한 멧돼지 같은 퉁퉁한 몸뚱아리가 드디어 현석의 시야앞에 들어섰다.



굉장한 위압감이다. 언젠가 그림 동화책에서 본 호랑이 라는 동물보다 더 무섭게 생긴 그녀였다. 현석은 그녀가 필시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닐거라 생각했다. 동물. 그중에서도 맹수에 해당하는 과가 아닐까 생각했다.





끼긱



유릿가루를 잔뜩 묻힌 볼펜이 멈추었다. '히히' 거리던 웃음 소리도 멈추었다. 현석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한참 동안이나 그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고 자신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기 때문 이었다. 이 아파트란 서식지에서는 그녀가 우두머리 라고, 생각하는 현석이었다. 생긴것도 오금이 저리도록 무서웠고, 덩치도 산만한 게 도저히 이길수 없을 것 같았다. 현석은 그녀가 마치 오늘부로 힘에서 자신에게 밀린 엄마를 밀치고, 이 아담함 보금자리에서 최강의 자리에 올랐던 거만한 자신에게 ' 더이상 까불었다간 목을 물어 뜯어 주겠어' 라고 협박 하는 듯했다.



툭.

"으아아아아 괴물이다!"



현석은 바닥에 쌓인 수북한 유릿가루 사이로 볼펜을 떨어 트리더니 이내 자신의 방으로 허겁지겁 도망쳤다. 아랫집 여자는 그제서야. 성난 눈을 깜빡이며 돌아서 유정을 바라보았다.



"자폐아 자폐아!. 봐주는대도 한계가 있습니다. 장애인 있고, 일반인 있는 세상 아닙니다. 어딜가도 사람은 모두 공평하게 대우를 받아야 해요. 우리가 참아주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 일겁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차별 하는게 아니에요.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면 자폐아 특수 학교에 보내야 할것이 아닙니까? 아무쪼록 저의 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이런 소란이 벌어지면 그땐 가만두지 않겠어요."



쉬지 않고 내뱉는 말에 숨이 턱턱 막혀올만도 했을텐데. 그녀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한숨에 그 긴말을 다 내뱉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숨통이 막혀오는건 오히려 유정이었다. 이윽고, 현관문을 쾅 닫더니 아랫집 여자는 올라올때 처럼 계단을 쿵쿵 거리며 내려갔다. 어쩌면 그 쿵쿵 거리는 소리는 성이나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비대한 몸때문에 나는 소리일 지도 몰랐다. 유정은 그녀가 나간 자리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이상 현석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불가항력 이었다. 허나 아랫집 여자의 말도 무시할순 없는 노릇 이었다. 유정은 쉽사리 대책이 떠올르지 않았다. 자폐아 학교라는 달콤한 유혹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잠시간 맴돌았다. 유정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정은 저녁 시간이 되어 남편이 돌아오면 이 이야길 들려주면서 진지한 대화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그때까지 현석이 얌전히 있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철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 몇년간은 받아본적이 없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상냥한 아내와 이 휘어질것만 같은 상다리는 다 무엇이란 말인가. 허나 유정의 버릇을 알고 있던 철준은 이 마다하기 힘든 대우를 뿌리치며 퉁명스레 말했다.



"현석이는?.....뭐야? 할말있는 거야?."



유정은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할때나, 힘든 부탁을 하려 할때 애교섞인 아부를 떨곤 했었다. 그런 그녀를 가장 잘아는 철준이었기 때문에 그렇듯 담담하게 대처할수 있었던 것이리라. 유정은 다 눈치채 버린 철준의 입에 간장이 잘 벤 도톰한 장조림 조각 하나를 넣어주면서 대답했다.



"응."



철준은 모처럼 다정한 유정의 대우를 더 받고 싶긴 했지만, 그뒤에 숨겨져있을 간사한 그녀의 속셈이 괘씸해 더이상은 이 아부를 받고 있을수 없었다. 거기다 내뱉는 말또한 행동과 너무나 다르게 짧고 굵지 않은가. 이건 대체 자신의 기분을 띄워 놓겠다는 건지 상하게 만들겠다는 건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말해 그럼."



"우리 이사가자."



"또 그 이야기야?."



"이번엔 좀 달라."



유정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이어 말했다.



"오늘 아랫집 여자가 또 왔다갔어. 당신도 알지? 우리 현석이 악취미. 아파트 사람들이 더이상 못견디 겠대."



유정은 '사실 나도 그래 나도 더이상은 견디기 힘들어......' 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다. 그것은 곧 자신이 현석을 돌보는 것을 힘들어 한다고 남편에게 고해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현석을 자폐아 학교에 보내길 원했던 철준에게 현석을 자신이 도맡아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유정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런 말을 내뱉는 다는건 남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였다. 결코 그것만은 용납할수 없었다.



"몇번을 말해? 이집 마련할려구 대출 받은거 메꿀려면 내가 몇년을 개고생을 해야되는지 몰라서 그래? 이사? 제발 우리 현실을 제대로 보란 말이야!"


"당신은 바깥일이 중요하고, 돈이더 중요할지 몰라! 하지만 난 아냐! 내 아들이 더 중요하다고! 우리 아들! 우리아들 차별하는 이 더러운곳에서 더이상은 못키워!"



"차별? 무슨 차별? 이동네에서 우리 현석이보고 자폐증이라고 놀리는 애새끼들 하나 있어? 당신에게 뭐라 그러는 여편네 하나 있냐고! 없잖아! 아무도 우리현석이 한테 뭐라고 안해! 시끄럽게 구니까 조용해달라는 거잖아! 차별이 아니야! 우리애가 이상한 거라구! 당신이 애를 가둬 놓고 있다고! 당신 울타리에서 못벗어 나게 하고 있단 말야! 그게 애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는 생각 안해?"



"내가...... 내가 우리 현석이를 저렇게 만들었다고.....?"



유정은 철준의 말에 너무도 기가 막혔다. 바깥일 한답시고, 그가 현석을 제대로 돌본적이나 있었던가. 유정은 철준에게서 만정이 떨어졌다. 유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현실을 피하는건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철준이라고 생각했다.



"너..... 우리 현석이 생일 언제인 줄은 알어.....?"


"갑자기 뜬금 없이 무슨 소리야?"



"대답해 개자*아..... 우리 현석이 생일 기억나냐구!"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모르지! 알리가 없지! 니가 우리현석이에 대해서 아는게 뭐야! 니 아들이라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관심도 없으면서 관심 있는 척 배려하는 척 하지마! 아픈 애를 어떻게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맡길수가 있어? 현석이가 나혼자 낳은 애야? 니가 씨뿌려서 낳은 새끼잖아!"



"...... 손가락으로 겨우겨우 세던 지 나이도 열살 넘으니까 못세는 애새끼야. 나는 이제 지긋지긋해. 너랑 나 늙고 병들어 뒤질때까지 저 새낀 평생 다섯살이야. 부모 하나 못알아 볼테지. 자 이제 어떡할거야? 니가 현석이 병이라도 고칠꺼야? 말해봐!"



결국 속마음을 말해버린 철준이었다. 항상 둘러 말하던 그에게 원하던 속마음을 들었으나, 알고 있었으면서도 철준의 이기어린 진심에 슬픔이 솟구치는 유정이었다.



"내가...... 내가 같이 아파해주면 돼..... 내아이니까...... 내가 현석이 만큼 아파해 주면 그걸로 돼......"



"에이 씨*!!"



쨍그랑. 철준이 던진 젓가락에 장조림 을 담아두었던 접시가 깨지면서 검은빛깔의 간장이 사방팔방 튀었다. 철준은 고개 숙여 울고 있는 유정을 뒤로 한채 집을 뛰쳐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철준은 생각했다. 어떻게 자신의 인생이 이지경이 되어 버렸을까. 결론은 하나였다. 장애가 있는 나의 아들. 세상이 버린 나의 아들.



"으....흐으으으윽..."



철준이 나가고 없는 황량한 식탁위엔 방금전 다툼이 있었던 흔적이 사방팔방 덕지 덕지 묻어 있었다. 유정의 새하얀 브라우스 위에도 간장이 몇방울 튀었는지 점처럼 묻어 있었다. 유정은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내 보지만 눈물샘은 마르지 않는 샘물인양 슬픔이라는 펌프질을 받아 계속해서 눈물방울을 솟아낸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유정은 철준이 너무나 미웠다. 그도 조금만 책임감을 가지고 현석을 돌보아만 주었다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가정이 파탄나는 상황까진 가지 않았을텐데. 유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석의 방으로 향했다. 이른 저녁부터 잠이 들어있던 현석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을 열자 방안 어둠속에서 새근거리는 현석의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유정은 발소리를 내지않게 조심조심 몇발짝 다가가 인형을 안고 침대에 누워자는 현석을 지긋이 바라본다. 가까스로 막았던 눈물이 다시금 흐른다.



"흐..읍.."



행여나 현석이 깰까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리는 유정이다. 유정은 눈물속에서 아른거리는 현석을 보며 속으로 다짐한다. ' 니 아빠는 너를 버렸지만, 엄마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 항상 니옆에서 엄마도 너와 함께 아파해 줄께.'




현석은 눈을 뜨자 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보다 꿈자리가 너무나 무서워서 더이상 눈을 감고 있을수가 없었다. 현석은 간밤에 꿈속에서 볼펜으로 신나게 자동차 유리를 긁었었다. 본네트에 올라타 앞유리를 어찌나 신나게 긁었는지, 쾌감이 극에 달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유리창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긁힌 자리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창을 긁을때마다 끼이익 거리던 소음 대신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었다. "꺄아아아아아악!"



놀라 잠을깬 현석은 서둘러 볼펜을 찾았다. 과연 현실에서도 꿈처럼 유리창에서 피가 흘러 나올까 궁금했던 것이다. 볼펜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베란다 앞에 앉았다.



"응? 어라?"



어제까지만 해도 긁힌 자국이 지저분하게 하얗게 일어나 있던 베란다의 유리창이 이상하게도 깨끗했다. 그새 엄마가 새걸로 갈아놓은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현석이었다. 서둘러 볼펜을 유리창에 가져다 댄 현석은 그제서야 유리창이 깨끗한 사실을 알아 차렸다. 유리창이 없었던 것이다. 현석은 볼펜을 든손을 허공에서 휘젓고 있었다.



"이...이이익."



서둘러 유리를 찾았다. 긁을 유리. 현석은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유리를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유리가 보이지 않았다. 검은 브라운관을 뽐내던 티비도, 볼록하게 튀어나온 모니터도, 심지어는 어저께까지만 해도 우유를 따라마시던 유리컵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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